시는 소설, 수필, 희곡, 평론 등과 함께 문학의 한 갈래입니다.
다른 장르들과는 다른 시 만의 특징이 있다면 운율이 있다는 것과 가장 함축적이라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반적인 특징 외에도 언어에 대한 변형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도 시가 가지는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김영랑 시인의 시 가운데 '나는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과 같은 시구를 예를 들어 볼게요.
'찬란한 슬픔'이라는 구절은 사실상 말이 안 되는 표현이죠. 슬픔이 찬란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시적 기교인 역설을 이용한 문학적 표현입니다. 또한 문장 전체가 '나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가 맞는 표현이겠지만 어순이 도치되어 있습니다. 이 또한 문학적인 장치로 어법을 파괴한 것이지요.
제가 위와 같은 설명을 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시에 부호(, . ! ?)를 쓰는 것은 시를 쓰는 시인이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문장부호 외에도 다른 기호나 화살표와 같은 것을 시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변형이나 형식에서 자유로운 것이 바로 문학 장르 가운데도 시라는 장르입니다. 심지어 그림을 시에 삽입하는 시인도 있지요. 오히려 기본적인 문장부호보다 훨씬 폭 넓은 일상 생활의 기호나 상징들이 시에 들어갑니다.
한국 현대시들을 살펴보면 부호가 많이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부 교수나 시인들이 시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시의 감정을 문장 부호로 나타나게 하는 것을 막고 시어를 통해 감정이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 문장부호를 쓰지 말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1.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2.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소월의 시의 일부입니다.
1번과 2번 중에 어디가 더 절절하게 다가오나요? 느낌표가 붙어 있는 2번일 겁니다. 시에는 느낌표가 됐든 어떤 다른 부호가 됐든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실제로도 많은 시들이 그렇게 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이나 시인의 강의에서 쓰지 말라고 한 것은 교육적 차원일 겁니다. 강의를 듣고 있다면 그 가르침에 따라 쓰지 않고 시어를 통해서 시를 쓰는 연습을 해 보는 것도 시작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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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인들은 수백 년 전부터 시(운문)는 구어체로 써야 한다고 했는데
구어체시(운문)를 완성하려면 당연히 붙여야 하지요.
영국 시인들이 말하는 구어체시(운문)란 뜻은 운율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시(운문)를 말하는 거니까요.
현대시에서 말하는 운율의 정체는-대한민국에서 잘못 가르치는-음률(리듬)적인 것이 아니라
[고아한 품위가 있는 기상적 개념]이랍니다.
그러므로 시(운문)는 그저 심상이나 좋은 느낌 따위를 서술하거나 묘사한 작문(시)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진정한 시(운문)는 고아한 품위가 있는 기상적 개념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문장만을 뜻하는 거랍니다.
영국 시인들이 쓴 구어체 시를 보면 알 수 있듯
한글로도 구어체 시를 써 보면
저절로 여러가지 부호를 사용하게 된답니다.
한글로 된 어떤 시 문장이 구어체 시인지 증명도 못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설도 많은데 잘 생각해보시길.
참고로 한글로 된 대표적 구어체시 몇 편을 제시하면
이상님의 <오감도1>,
김수영님의 <풀>,
윤동주님의 <자화상>,
이육사님의 <말>,
김영랑님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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